옷을 입고 집을 나서기 직전, 거울 앞에서 멈춰 선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그냥 이대로 나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혹은 괜히 예민해 보일까 봐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간 날들. 그런 날들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는 그날을 “패션 센스 없는 날”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그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어 주었다.
완벽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실수도 하고 어색한 날도 겪어본 사람이 결국 자기 스타일을 더 잘 안다. 이 글은 그런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결국 괜찮았던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왜 이렇게 이상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날은 중요한 미팅이 있던 어느 월요일이다. 아침에 서둘러 옷을 고르느라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셔츠를 꺼내 입었는데, 거울에서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해 앉아 보니 셔츠의 길이가 애매하게 올라가 바지가 불편하게 드러났고, 하루 종일 옷이 신경 쓰였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 내내 몸을 의식하며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또 다른 날은 친구들과의 모임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꾸미고 싶어서 트렌디한 아이템을 선택했는데, 막상 모임 장소에 도착해 보니 나만 혼자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튀어 보였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괜히 옷이 더 신경 쓰였고,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며 “왜 이걸 입었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런 날들의 공통점은, 옷이 나를 편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타일이 어떻든, 옷이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 그날은 자연스럽게 ‘실패한 패션의 날’이 된다.
패션에서 실패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처음에는 이런 날들이 싫었다. 괜히 민망하고, 나만 뒤처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런 실패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패션은 생각보다 아주 개인적인 영역이다. 어떤 옷이 예쁜지보다,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내가 편안한지가 더 중요하다. 한 번 어색한 옷을 입고 하루를 보내 본 사람은,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편한 옷’을 고르게 된다. 이건 책이나 유튜브로는 배울 수 없는 감각이다.
그리고 실패한 날들은 나에게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이 길이는 불편하구나.”
“이 색은 내 얼굴이 더 칙칙해 보이네.”
“이 스타일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런 작은 깨달음들이 쌓여서 결국 나만의 스타일이 된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패션 센스 없어 보였던 날들은 사실 센스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들이 괜찮았던 이유
가끔은 그날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된다. 어색한 코디,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는 조합.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안에 담긴 나의 표정은 나쁘지 않다. 친구들과 웃고 있고, 일에 집중하고 있고,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옷이 완벽하지 않았을 뿐, 그날의 나 자체는 괜찮았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패션을 통해 자신을 평가한다. 오늘 옷을 잘 입었으면 기분이 좋고, 조금 어색하면 하루 전체가 망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내 옷을 유심히 보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조금 어색해 보였다 해도, 그것이 그날의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패션은 결국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나 그 자체는 아니다. 그래서 가끔 센스 없어 보였던 날들이 있었어도, 그날의 나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옷을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나답게 입게 되었다.
완벽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실수도 하고 어색한 날도 겪어본 사람이 결국 더 단단한 스타일을 가진다. 패션 센스 없어 보였던 날들은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었다. 그날들이 있었기에 나는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다음에 거울 앞에서 “오늘 좀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날 역시 언젠가 돌아보면 괜찮았던 하루로 남을 것이다.